길이 이야기(Giri's Story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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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자항아리가 주는 지혜

길이 2007. 10. 9. 14:48
주변에서 다들 삶이 어렵다고 한다.

경제의 위기감을 호들갑스럽게 증폭시키는 매체가 아니더라도 우리 경제가 예전 에 비해 활력을 잃고 소비가 위축되는 조짐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.

그런데 어렵다는 말은 보다 풍요했던 시절보다 덜 쓰고 덜 누리고 사는 것에서 나온 불만을 담은 표현이겠다.

앨빈 토플러는 현대사회가 '창자' 경제에서 '심리' 경제 시스템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.

육체의 필요는 협소하며 그 경계도 분명하니 충족도 어렵지 않지만, 심리는 한계나 특정한 경계가 없어 그 만족도 쉽지 않다.

군자는 의리에 살고 소인은 이익에 산다고 했다.

부를 향한 광란으로 뒤덮인 사회에서 눈앞에 이익을 놔두고 의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.

모두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소비하려는 이 탐욕의 시대에 군자의 의리를 떠올리게 하는 한 미담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.

내가 아는 시인 중에 가난한 이가 있다.

세상의 명리를 쫓지 않고 사니 늘 가난이 곁을 떠나지 않았다.

급히 돈 쓸 일이 있어 시인은 집안에 있던 백자 항아리를 들고 고향 친구를 찾았다.

고향 친구는 혈액암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유명한 의사다.

시인은 의사 친구에게 백자 항아리를 내밀며 돈 부탁을 했다.

적잖은 액수였다.

의사 친구는 두말 하지 않고 돈을 마련해주었다.

돈까지 내주며 항아리를 맡는 수고까지 떠맡을 수는 없다고 항아리는 받지 않았다.

한해 뒤 시인은 또 급하게 돈 쓸 일이 있어 염치 불구하고 그 친구를 다시 찾아갔다.

그때도 시인은 백자 항아리를 옆에 끼고 갔다.

이번에도 친구는 시인의 돈 부탁을 들어주었지만 항아리를 받지 않았다.

그리고도 두어 번 더 시인은 의사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.

결국 의사 친구는 시인이 가져온 백자 항아리를 받았다.

그리고 세월이 흘렀다.

시인의 딸이 혼사를 올리게 되었다.

시인은 의사 친구를 다시 찾았다.

이번엔 돈 부탁이 아니라 주례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.

의사 친구는 기쁜 마음으로 주례 부탁을 승낙했다.

결혼식 날이 다가왔다.

의사 친구는 말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.

하객들은 조용히 앉아 그 눌변의 주례사를 경청했다.

다른 결혼식에서 흔히 듣는 주례사와는 많이 다른 주례사였다.

사람들이 술렁거렸다.

주례가 보자기로 싼 백자 항아리를 주례석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다.

시인의 소유물이던 그 백자 항아리를 자신이 갖고 있게 된 경위를 더듬더듬 설명했다.

주례는 젊은 부부에게 부탁을 한다.

살면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항아리에 귀를 대고 항아리가 하는 말 에 귀를 기울여라. 그렇게 백자 항아리는 시인에게서 의사 친구에게로 갔다가 다 시 시인의 딸에게 돌아왔다.

아마 누구라도 백자 항아리에서 울려나오는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크고작은 난관을 잘 이겨낼 것이다.

나는 수도승을 흉내 내서 무욕의 삶을 따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.

필요를 넘어서는 물질에 대한 욕구는 어느덧 제2의 피부처럼 달라붙어서 그것을 떼려면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없다.

물질의 욕구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쉬운 실천이 아님은 분명하다.

그러나 행복이나 진정한 풍요의 느낌은 물질적 욕구의 충족에서 찾을 수는 없다 .

사사로운 이익을 두고 그것을 차지하려는 다툼과 갈등이 생기면 서로에 대한 미 움이 커진다.

우리 사회에 그 미움의 에너지가 너무 커진 듯하다.

우리는 물질의 삶만을 키우고 따르느라 내면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.

내면의 공허는 물질로서 메워지지 않는다.

가지려 애쓸수록 존재는 더욱 왜소해지는 법이다.

오히려 적당히 자족할 때 심리적 부와 풍요를 느끼고, 감정의 금욕, 검소한 삶에 대한 가치를 따를 때 더 큰 삶의 충일감을 누릴 수 있다.

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다.

그러나 태양의 빛을 받아 어두운 밤길을 가는 이의 앞을 비춰줄 수 있다.

우리는 달과 같아서 스스로 저 자신의 행복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는 있다.

저마다의 이익, 자기만의 행복을 좇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될 수는 없다.

시인과 그 친구의 이야기는, 나는 너에게, 너는 나에게 어둔 밤길을 비춰주는 달이 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.

(출처) 한국경제신문 / 장석주 시인ㆍ문학평론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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